소환되다

어딘가에서 연기 같은 구름 조각들이 몰려와 맑고 청명한 하늘에 어떤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하늘이 어둡고 불길한 구름으로 채워져서 희미한 달빛마저 가려버렸다. 당신이 가볍게 잠든 사이에 침실이 깊은 어둠으로 덮였다.

문득 잠에서 깬 당신의 졸린 눈에 벽에서 반사된 부드러운 푸른빛이 들어왔다. 빛이 비춰지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당신... 침대 위에 떠오른 희미하게 반짝이는 원에서 그 빛이 퍼져나오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빛을 보고 있는 동안 음영(陰影)이 그 빛의 한가운데 나타났다. 음영이 차츰 어떤 형태를 갖추자 당신은 그 형태가 ‘궁극적 지혜의 서’를 상징하는 문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문양을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근처 숲에 있는 ‘원형 둘레돌’ 너머의 세계에서였다. 그곳에서 벌어졌던 지난번 임무는 당신 삶의 방향을 영원히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당신은 빛이 천천히 사그라져서 마침내 어둠이 덮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천천히 당신의 침대 위로 떨어졌다. 손을 뻗어 침대 맡에 있는 등을 켠 당신은 앞에 놓인 그 물체가 메달(Amulet)임을 알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그것을 집어 들었다. 메달을 손에 꽉 쥐자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메달 표면의 패인 홈을 따라서 움직였다. 마침내! 브리타니아에서 당신을 부른 것이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당신은 급히 옷을 걸쳤다. 큰 걸음으로 방을 가로지른 당신은 선반위에 놓인 유리 상자 앞에 섰다. 유리 아래로 보이는 벨벳 천위에 놓인 것은 아바타의 상징인 앙크(Ankh)였다. 당신은 천천히 유리 상자를 열고 그것을 꺼냈다. 만약 당신이 생각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아마도 이것이 필요할 것이었다.

침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서두르던 당신은 한 손으로 문고리를 잡은 채로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잠시 망설였다. 머리를 흔들며 이런 생각들을 쫓아내고서 문을 잠그고 집을 떠났다.

어두운 구름을 뚫고 가끔씩 비치는 달빛의 도움을 받으며 근처 숲 버드나무 근처에 있는 원형 둘레돌을 향해 갔다. 달빛으로 생긴 낯선 그림자가 나무 꼭대기 사이를 뚫고 퍼져갈 때 당신의 마음속에도 지난 일에 대한 생각이 퍼져갔다. 원형 둘레돌을 보는 순간 당신의 주의가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왔다.

브리타니아! 친구들과의 깊은 우정이 있는 그 곳으로 데려다 줄 반짝이는 푸른 문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자주 이곳을 찾아와 몇 시간씩 앉아 있곤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푸른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발걸음이 점점 뜸해지다가 결국에는 슬프게도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

새로운 희망을 품고 당신은 한 손에는 앙크를, 다른 손에는 메달을 든 채로 원형 둘레돌 앞에 섰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급함이 걱정으로 바뀌었다. 문은 반드시 열려야 했다! 메달이 그렇게 나타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리라! 당신은 이런 생각으로 오랫동안 그곳에 서있었다. 어느 순간 메달이 손에서 미끄러져 둘레돌 안으로 떨어졌다.

원 안에 떨어진 메달을 실의에 빠진 눈으로 바라보던 당신은 메달 위에 어렴풋한 푸른빛이 반짝이는 것을 깨달았다. 한 손에 쥐고 있던 앙크를 바라본 당신은 그것 또한 부드러운 푸른빛에 덮여있는 것을 보았다. 조심스럽게 앙크를 메달 옆에 놓았다.

즉시 희미하게 반짝이는 푸른 문이 솟아올랐다.

거세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당신은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도착하다

불과 100피트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쳤고 이로 인해 순간적으로 상실된 당신의 방향 감각이 다시 돌아왔다.

당신은 어두운 숲으로 둘러싸인 벌판에 서 있었다. 머리 위로 어지럽게 흐르는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끊임없이 천둥과 번개를 당신 주위에 쏟아대고 있었다. 브리타니아! 브리타니아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 수년간 기다리다가 돌아왔음에도 의기양양함 대신 불길한 예감만이 가득했던 것이다.

“친구여!” 뒤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불렀다. 한때 익숙했던 그 목소리에 당신은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에게 다가온 이는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샤미노였다.

당신 손을 세게 붙잡으며 그가 외쳤다. “소환이 실패할까봐 모두들 걱정했다네! 블랙쏜의 간섭 없이 마법을 사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네. 소환이 누군가에게 발각되었을 테니 서두르게나.”

당신은 친구의 판단을 믿고 안전한 시간이 올 때까지 많은 질문들을 마음에 담기로 했다. 서둘러 당신 앞에 놓인 메달과 앙크를 챙겼지만 미처 출발하기도 전에 당신 주위의 칠흑 같은 암흑이 소용돌이치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음산한 어둠속에서 세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쉐도우로드!” 샤미노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그가 번개같이 검을 빼들고 당신과 희미하게 보이는 그 유령들 사이에 섰다.

맨 앞의 유령이 희미한 집게손가락으로 허공에 어떤 문양을 그렸다. 그러자 손가락 앞에 검은 화살의 형상이 만들어지더니 공중에 뜬 상태로 잠시 머물렀다. 그 다음 쉐도우로드가 손을 까딱하자 그 이글거리며 불타는 화살이 샤미노에게 날아갔다. 그 화살이 샤미노의 가슴에 명중되자 그가 검을 떨어뜨리고 바닥에 쓰러졌다. 고통으로 인한 찡그림과 그보다 더 끔찍한 무엇인가가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그 어두운 형상이 당신 가까이로 다가왔다. 당신 앞에는 샤미노가 고통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그는 단 한 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그 때 당신이 꽉 쥐고 있던 메달에서 아무런 전조도 없이 밝은 푸른빛이 퍼져 나왔다. 그 빛을 본 쉐도우로드들이 뒷걸음쳤다. 그러자 희미한 그림자들이 소용돌이치더니 그들이 나타났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누워있는 샤미노의 가슴에는 검은 화살이 박혀 있었다. 평범한 화살은 그런 고통을 주지 않는다. 화살이 만들어질 때 사악한 힘이 깃들여진 것임이 분명했다. 화살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은 당신은 샤미노의 몸에서 그 화살을 뽑아 온 힘을 다해서 집어던졌다. 화살 주위의 공기가 어긋나면서 마치 어둠속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것처럼 보였다.

샤미노가 안정을 찾았다. 아직도 피가 흐르는 상처를 살펴보다가 화살에 깃든 사악한 힘이 그의 몸에 퍼져나가고 있음을 알았다.

“이올로의 오두막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네.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된다네.” 샤미노가 속삭였다. 당신은 굳은 의지로 샤미노를 부축해서 벌판을 빠져나와 동쪽을 향해 난 숲으로 들어갔다.

브리타니아의 현황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을 가라앉히는 훌륭한 루트 연주 소리가 앞에 있는 숲에서 들려왔다. 굽어진 길을 돌아가니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오두막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 보였다. 오두막에 다가가서 샤미노를 부축한 팔을 풀고 두꺼운 나무문을 두드렸다. 금속 현에서 나오는 소리가 잦아들더니 루트 연주가 갑작스럽게 멈추었다.

“누구십니까?” 오두막 안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진맥진한 채로 기대있던 샤미노가 속삭였다. “문을 열게나, 친구여! 안 그러면 내 피로 자네의 문 앞을 장식할걸세.”

문이 열리고 문가에 서있는 이올로의 낯익은 모습이 나타났다. 샤미노를 돕기 위해서 손을 뻗은 이올로가 걱정스런 얼굴로 당신에게 말했다. “보기만 해도 즐거운 나의 친구여. 오는 길에 문제가 있었나 보군.” 샤미노를 침대에 눕히고 그의 상처를 돌보며 허물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깊은 염려가 담겨 있었다.

샤미노를 돌본 후에 이올로가 거품이 나는 묽은 수프를 머그잔 두 개에 따른 후 따뜻한 난롯가에 있는 소박한 식탁으로 당신을 불러들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 자네를 보니 정말로 반갑네. 자네를 소환하는 게 발각된 모양이군. 샤미노의 상처를 보니 자네도 이제는 쉐도우로드의 존재를 알겠군.”

당신은 이올로에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차례로 얘기했다. 인내심이 바닥난 당신에게서 질문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친구여, 천천히 묻도록 하게.” 이올로가 미소 지었다. “안심하게나. 그러면 이런 안 좋은 시기에 우리에게 벌어졌던 슬픈 사건들을 모두 알려주겠네.”

“자네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로드 브리티시와 브리타니아의 가장 저명한 마법사들이 그의 성에 모여서 ‘대 위원회’를 열었다네.

대 위원회가 제정한 법령 중에 하나는 지하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사악한 생명체들을 가둬두기 위해서 브리타니아와 연결된 던전을 봉인하는 것이었다네. 일부 생명체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탈출하려고 애쓰지만 그들의 눈은 밝은 빛을 견디지 못한다네. 드물게 대낮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밤에 여행하는 여행자들을 노리니 각별히 조심해야할 걸세.”

“대 위원회가 제정한 또 다른 법령은 단연코 가장 힘든 것이었네. 깊은 심연에 놓인 ‘궁극적 지혜의 서’를 꺼내오는 것이었지. 대 위원회가 가진 마법의 힘을 모두 끌어 모은 후에야 그 깊숙한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네. 심연이 있던 자리에는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서 거대한 산이 만들어졌지.”

“위원회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새롭고 영예로운 산이 솟아나면서 모든 브리타니아가 놓여있는 곳 아래에 거대한 빈 공간이 생겨났다네. 일부 사람들은 던전 맨 아래층이 이 지하 공간으로 통한다고 추측한다네. 지하세계가 원래 모습보다 훨씬 더 큰 공포를 주는 생명체들을 키워내는 거대한 포육실이 된 것이라네.”

“모험가들이 영혼의 숲을 통과해서 흐르는 강에 숨겨진 터널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곳은 봉인된 던전 중의 하나가 있는 곳으로 그 통로가 지하세계로 연결되어 있었다네. 그들이 지치고 당황한 채로 돌아오면서 어두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생명체와 땅을 흔들어대는 생명체가 있음을 브리타니아에 알렸다네.”

“로드 브리티시가 그 얘기에 흥미를 느끼고 그와 함께 지하세계를 탐험할 충직한 전사들을 모았다네. 하지만 그의 일행은 용맹스럽게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와 힘을 가진 이 생명체들에게 희생되었지.”

“탐험의 유일한 생존자가 끔찍했던 그들의 여행을 기록한 작은 양피지를 갖고 돌아오자 브리타니아는 공포에 휩싸였다네.” 이올로가 어두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블랙쏜, 많은 사람의 신임을 받는 그에게도 야망이 있었다네. 그가 공포에 따른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브리타니아의 통치권을 이어받았지. 쉐도우로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었네. 그들은 우리들이 모르는 방식으로 블랙쏜을 타락시켰다네. 그리고 이제 블랙쏜의 권력은 억압과 전제정치로 유지된다네. 미덕의 의미 역시 독선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바뀌었지.”

샤미노와 나, 그리고 자네가 아는 다른 벗들이 블랙쏜의 법 아래에서 범법자로 낙인찍혀서 보통의 범죄자들이 그렇듯이 숨어 다녀야 했네. 우리들은 서로 간에 거리를 두어서 모두가 한꺼번에 잡혀가는 것을 방지했다네. 하지만 그 방법도 영원할 수 없었지. 블랙쏜과 그 흉악한 쉐도우로드들이 브리타니아를 고통으로 물들였다네. 로드 브리티시가 아직 살아있다면 통치권은 반드시 그에게로 돌아가야 할 걸세.

상황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우리들은 모임을 갖는 모험을 감행했다네. 그 모임에서 실현가능한 유일한 방법을 찾았다네. 그것은 로드 브리티시의 운명을 결정지을 임무를 우리와 함께 수행하기 위해 자네를 소환하기로 한 것이라네. 쉐도우로드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그런 강력한 마법의 힘을 쓴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지.

얘기에 담긴 침울함을 떨쳐낸 그의 눈이 반짝이는 유쾌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가 샤미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이곳에 왔으니 더 이상 나쁜 일은 없겠지. 명목만 모험가인 이 친구를 치료해서 체력을 회복하게 한 다음 우리들의 임무에 동참시키도록 하세나. 로드 브리티시가 아직 숨 쉬고 있다면 그를 다시금 브리타니아의 공정한 통치자로 복위시켜야 할 것이네.

모험 떠나기

당신은 브리타니아가 심각한 위험에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오프닝이 끝나면 다시 메뉴 선택 화면으로 돌아간다. 메뉴에서 [J] 키를 누르면 브리타니아와 로드 브리티시를 구하기 위한 모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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